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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철은 대한민국의 배구선수 출신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이탈리아에서 프로배구 선수로 활약 했으며 이탈리아 프로팀에서 감독 생활도 했다.

밀주초등학교 때 처음 배구를 시작하였는데, 원래 그는 중거리 육상 선수로 1,500m를 4분대에 뛰었던 선수였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운동장에서 굴러온 공을 주워서 갖다 주고 보니 지루한 육상보다 재미있겠다는 생각에 배구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집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육상과 배구를 같이 하게 되었고, 육상 실력도 좋은 편인데 당시 그가 다니던 학교와 경쟁 관계에 있던 학교를 의식한 나머지 그는 유급을 하게 된다.

중학교 때부터는 배구에만 전념했다. 이 무렵부터 그는 서울로 상경하여 대신중학교로 전학하였다. 키가 작아 세터를 했지만 그의 실력이 뛰어났고, 이로 인해 중학교에서 또 1년을 유급하게 된다.

대신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에 입학한 1975년에 생애 첫 국가대표에 선발되었다. 197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김호철은 현란한 토스워크를 선보였고, 이에 힘입어 대한민국이 4위에 입상하자 이탈리아 언론이 "원숭이가 나무에서 재주를 부리는 것 같다"며 한국 팀의 선전을 전했다. 이 중심에 섰던 김호철은 이탈리아 클럽 팀으로부터 이적 제의까지 받았고, 그로부터 3년 뒤 멕시카노 파르마에 입단함으로써 성사됐다.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후 금성통신(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에 강만수와 함께 입단, 짧으나마 금성통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이듬해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였다.

이 때 그보다 먼저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였던 대한민국 여자 배구의 레전드 조혜정과 '아침이슬'로 유명한 가수 양희은이 그의 이탈리아 리그 진출을 돕기 위해 나섰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양희은은 영어회화를 유창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김호철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고, 이를 토대로 김호철은 이탈리아에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때 인연으로 조혜정과 양희은과는 서로 누나 동생이라 부르는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훗날 조혜정이 GS칼텍스 감독에 취임한 후 김호철 감독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게 된다.

이탈리아 진출 전에 당시 도로공사 선수였던 임경숙 씨를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는데 임경숙 씨는 선배의 갑작스러운 은퇴로 공격수에서 갑자기 세터로 보직을 바꿔야 했다. 당시 김호철의 개인 코치를 받게 되었고 이 둘이 마음이 통하게 되면서 1981년 결혼하여 이탈리아로 진출해 해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이탈리아 리그에 진출하여 전설적인 존재가 되었다. 이 때 있었던 에피소드 중에 이탈리아 진출 첫 경기에서 당시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하는 김호철에게 팀 동료 선수가 네가 잘못해서 범실 났다며 투덜거리자 김호철이 홧김에 그 동료 선수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찼다. 관중들은 배꼽을 잡고 폭소를 터뜨렸지만, 다른 동료 선수들이나 코칭 스텝들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일 이후 동료 선수들은 김호철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했으며, 소속팀인 멕시카노 파르마 클럽은 1부리그로 승격하였고, 1983년과 1984년에 우승까지 차지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때 붙은 별명이 황금의 손(Mani d'Oro).

1984년에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가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하자 파르마 시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성통곡하는 팬들이 그가 돌아가는 것을 반대할 정도였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원래 소속 팀인 금성통신에 들어간 게 아니라 현대자동차서비스로 들어갔다. 그리고 현대의 리그 3연패를 이끌었다. 

1988년에 다시 이탈리아 리그 시슬리 트레비소로 들어갔고, 비첸사 클럽에서 은퇴할 때까지 활동하였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 2부 리그를 전전하는 팀을 1부 리그로 승격시킬 정도로 지도력을 발휘하였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애초에 2부리그 팀을 맡아서 1부리그로 승격시킨 적이 없으며, 1999년부터 스피드 배구가 도입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완전히 밀려나기 시작했다. 1부리그에서의 실패로 2부리그 감독을 하였으나 2부리그에서도 13위를 기록하는등 처참한 기록을 남긴다. 이탈리에서의 마지막 클럽은 2부리그 클럽 트리에스엔테에서는 간당간당 하다가 김호철 감독이 물러난 이후 급격히 성적이 상승해 1부리그 승격에 성공하는 등 알려진 것과는 달리 많은 한계를 보인 지도자였다.

2003년에 대한민국 리그로 사실상 영구 복귀하였다. 당시 현대캐피탈은 故 송만덕 감독과 갈등을 빚은 센터 방신봉의 항명 사건, 리베로 이호의 강제 은퇴 등으로 생겨난 선수단 집단 이탈 사건으로 배구단 해체 위기까지 갈 정도로 분위기가 어수선하였고,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처음 현대캐피탈로 왔을 때 현대캐피탈은 모든 것이 엉망이었다. 선수들은 예전같지 않았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기 때문에 선수단 분위기가 뒤숭숭했다. 그러한 와중에 김호철 감독에게 건수가 제대로 잡히게 되는데, 상무와의 경기에서 시원하게 0-3으로 패하고 온 날 밤에 모든 선수들이 자는 모습을 보고 말았다. 이에 열받은 그는 다음날 아침부터 선수단 숙소에 있는 소파를 치우고 감독실 의자까지 치워 버렸다. 그 다음부터는 으름장을 늘어 놓았다. 내 말 안 들을 선수는 필요없으니 나가라며 밤늦게까지 훈련을 실시했다. 매일매일 반복되었던 일과가 하루 아침에 빡세게 돌변하였고 저녁을 먹기 위해 주문한 자장면이 불어 터지며 먹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가 하면 선수들의 훈련 태도가 맘에 들지 않자 스스로 체육관 앞에 있는 연못으로 들어갔는데 이를 본 선수들이 모두 놀라 전원 연못으로 뛰어들어갔다는 일화도 있다.

감독을 맡으면서, 그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꽤나 많이 들어왔다. 도메니코 라사로 전력분석관이 들어왔고, 체력 담당관 안드레아 도토가 들어왔다. 당시에 대한민국 배구는 지도자들이 전력분석의 개념을 갖지 않았고 그냥 선수 시절 배웠던 배구 이론을 토대로 시합을 독려하던 시절이었다. 그가 리시버를 귀에 꽂고, 관중석 한 구석에서는 전력분석관이 보내는 정보를 토대로 작전 지시를 내리는 모습은 이전까지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지금은 남녀부를 막론하고 모든 팀의 감독이 시합 중 리시버를 끼고 전력분석관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아 작전 지시를 내리고 있다.

그는 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취임한 후 취임 일성으로 첫 해에는 한 번이라도 삼성화재를 이기고, 두번째 해에는 삼성화재를 넘어서고, 세번째 해에는 우승을 차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이루어졌다.

2004 시즌에 삼성화재에 계속 패하다가 삼성화재의 리그 77연승을 기어이 저지하였다. 당시 김호철은 "이탈리아로 돌아가고 싶었다."며 그 때를 회상한다. 선수들이 패배 의식에 젖어있다 못해 막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2005 원년 시즌에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에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으나 마침내 다음 시즌에서 통합 우승을 차지하며 삼성화재의 10년 연속 우승을 좌절시켰다.

이후 그는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월드리그 성적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당시 같은 팀에 있던 박철우가 이상열 코치에게 구타당하는 사고가 선수촌에서 벌어졌고, 이후 박철우가 아버지와 함께 기자 회견을 갖게 되자 배구계는 난리가 났다. 김호철 감독은 눈시울을 붉히며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사임하였고, 이상열 코치는 무기한 자격정지를 당하는 등 파장이 컸다. 하지만 무기한 자격정지를 당한지 2년만에 KOVO에서 이상열을 경기운영감독관으로 선임했고 2012년에는 경기대학교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 했다. 이 후유증으로 김호철 감독은 박철우와 사이가 나빠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물론 겉으로는 박철우와 화해했다고 하지만, 안그래도 신치용 감독의 딸인 신혜인 (前 부천 신세계 쿨캣 농구선수)과 교제하고 있던 박철우의 마음은 이 사건이 결정타가 되어 2009-2010 시즌 후 박철우는 FA 자격을 얻자 기다렸다는 듯이 신치용 감독이 있는 삼성화재로 이적하였다.

이후 러시앤캐시, 다시 현대캐피탈 감독을 지낸후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야인으로 지냈던 그는 2017년 유관순체육관에서 현대캐피탈 경기를 참관하는 등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였고, 김남성의 후임으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계약 기간은 2017년 12월 까지였다.

그리고 2018년 2월 7일 대한배구협회는 신설된 《대표팀 전임감독 선발인사위원회》를 열고 초대 남자부 전임감독에 김호철 감독이 선임되었다고 공지되어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계속해서 이어나가게 되었다.

2019년 4월 2020년 도쿄올림픽을 준비하던 김 감독이 OK저축은행의 새 사령탑으로 내정됬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김호철은 전임제 감독 계약 당시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프로팀 감독을 맡지 않는다'고 약속했는데 이러한 계약서에 명시된 조항을 무시하고 협상에 나섰기 때문에 논란이 될 수 밖에 없었으며, 게다가 김호철 본인이 먼저 OK 구단에 감독을 맡고 싶다고 접촉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대한배구협회 차원의 징계와 위약금 제재를 피하긴 어려워 졌다.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했는지 4월 15일 대한배구협회 관계자에는 김호철 감독이 오한남 회장을 만나 대표팀 사령탑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국가대표 감독을 그만두고 프로팀에 가려고 했을 만큼 태극마크의 가치를 하찮게 여기고 떨어뜨렸다는 점과 더불어 애초에 전임 대표팀 감독이었던 박기원 감독이 대한항공의 사령탑으로 가면서 문제가 되자 대표팀감독의 처우를 개선해주자는 취지로 전임 감독제를 만들어 김호철을 전임 감독으로 선임했는데 이러한 취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기에 도덕적으로 비난을 피하긴 힘들게 되었다.

결국 배구협회는 김호철 감독의 프로구단 이적 시도관련 진위파악 착수에 나섰으며, 경기력향상위원를 열어 스포츠공정위원회 회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한편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최천식남자 경기력향상위원장이 책임을 지고 사표를 던졌다.

김호철
음력 1955년 1월 13일, 경상남도 밀양시
175cm

학력
밀주초등학교
대신중학교
대신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선수경력
금성통신 (1980~1981) 
멕시카노 파르마 (이탈리아) (1981~1985) 
현대자동차서비스 (1985~1988) 
시슬리 트레비소 (이탈리아) (1988~1990) 
비첸사 클럽 (이탈리아) (1990~1995)

감독경력
카리파르마 파르마 감독 (1995~1996) 
시실리 트레비소 감독 (1996~1998) 
라벤나 밀라빌란디아 감독 (1998~2000) 
트리에스테 감독 (2001~2003) 
현대자동차-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 (2003~2011)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6, 2009) 
아산 러시앤캐시 드림식스 감독 (2012~2013)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 (2013~2015)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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