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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방송 출연등을 기점으로 인터넷 등에서의 세속적인, 특히 정치적인행보가 잦아지고 자연스럽게 수많은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다.

1946년 9월 10일(음력 8월 15일)에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 상백리에서 출생했다. 외가에서 태어났다고 바깥 외(外)자와 항렬자인 빼어날 수(秀)를 합해서 이름이 이외수가 되었다.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는데 그가 3살 때 병으로 타계했다. 그의 아버지는 직업군인이었고 6.25전쟁에 참전하여 화랑무공훈장까지 받은 분이었다.

아버지는 여러 곳에서 군복무를 하였고 이외수는 아버지를 따라 자주 학교를 전학다녔는데 고향인 경남 함양군 상내백초등학교, 대구광역시 삼덕초등학교, 강원도 화천군 신풍초등학교, 강원도 양구군 양구초등학교,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 등을 거쳤다. 6학년 때는 아버지가 제대를 하고 교사가 되었는데 이외수의 담임을 맡기도 했다.

강원도 인제군 기린초등학교와 인제중학교를 거쳐 강원 인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4년 춘천교육대학교에 입학했다. 1968년 육군에 입대한 뒤 71년 제대하고 72년 춘천교육대학교를 중퇴했다.

어릴 적 꿈은 화가로 춘천교대 시절 미전에 입상한 경력도 있었지만 스스로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절망해서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이 해에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견습어린이들>이 당선되었으며 73년엔 인제남초등학교 곗골(인제읍 남북리 일대)분교 소사로 잠시 근무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1970년대(특히 70년대 초)는 가난으로 찌든 절망의 세월이었다. 춘천에 살면서 구걸한 경험도 있고 하숙집 방세가 밀려서 쫓겨난 적도 있으며 크림빵으로 하루를 때운다거나 생라면 한 봉지로 며칠을 때운 경험도 있다. 심지어는 빈 쓰레기통이나 개집에 들어가서 하룻밤을 새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젊은 시절을 보낸 것에 본인도 한이 서리고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가끔씩 들어오는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으신가?"라는 질문에 "내가 미쳤냐?"라고 대답한다고 한다. 교육대학교 재학시절에서는 당시 학장이 이외수의 생활사정을 참작해서 조금이나마 이외수의 생활을 도와줄 정도이기도 하였다.

1975년 <세대>지에 중편 <훈장>이 신인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정식 등단해서 생활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였고 강원일보에 잠시 근무하였다. 1976년 11월 전영자와 결혼하고 춘천 세종학원과 원주 원일학원에서 강사로 근무하였다. 장편 <꿈꾸는 식물>을 발표. 몇편의 단편을 발표하고 창작에만 전념키 위해 79년 모든 직장을 포기하고 이후 전업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초창기 창작 활동에서는 가난한 시절 가끔씩 사창가에 빌붙기도 였는데 이 때의 경험이 <꿈꾸는 식물>을 집필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후 창작집 <겨울나기>, 장편 <들개>, <칼>, <산목>, <벽오금학도> 등을 비롯해 에세이 <내 잠속에 비 내리는데>, <말더듬이의 겨울수첩> 등을 간행하였다. 특히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꿈꾸는 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은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유미주의적 소설로 신비체험과 초현실세계를 즐겨 다루는 이후의 작품세계를 가늠하게 하는 중요작품으로 평가된다.

화가지망생이기도 했던 작가는 90년 나우 갤러리에서 '4인의 에로틱 아트전' 과 94년 신세계 미술관에서 선화(仙畵)개인전을 열었다. 

2014년 10월, 위출열로 인해 진단을 받았더니 위암 2기 판정을 받아 일시적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1달 가까이 투병생활을 하였다. 위 절제 수술까지 수반해야 할 정도의 병세였고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쳐서 고비는 넘겼지만 항암치료는 지속적으로 받았고, 2015년 6월에 항암치료를 마쳤다. 

2018년 7월에 음악 단과대학인 남예종(남서울예술종합학교) 학장으로 취임했다.

이외수는 오래 전부터 방송에서 일회성 출연을 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그 양적, 질적 비중이 커진 것은 2000년대 중반 이후(좀더 자세히는 「장외인간」 출판을 전후로)의 일이다. 이 시기부터 텔레비전 광고도 찍고 시트콤에서 고정 배역도 맡아보고 심지어 자기 이름을 딴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였고 자연스럽게 대중적인 인지도도 대폭 상승했다.

이외수는 오래 전부터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서 심심치 않게 각종 시사적, 정치적 발언을 남겼는데 대중적 인지도가 오름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일종의 논객이 되었다. 전체적인 성향은 민족주의에 가깝고 진보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수많은 사회적 논란과 물의를 빚어왔기 때문에 그런 그의 모습을 탐탁찮게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한다.

2019년 4월 22일 우먼센스 5월호에 따르면 이외수-전영자 부부는 1976년 결혼 이후 약 43년 만인 지난해 말부터 별거에 들어갔다. 이혼 논의 중 최근 졸혼으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졸혼은 결혼에서 '졸업'한다는 의미로, 부부가 법적 혼인관계를 유지하되 서로의 사생활에 관여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말한다.

현재 이외수 작가는 강원도 화천, 아내 전영자씨는 춘천에 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영자 씨는 '우먼센스'와의 인터뷰에서 "건강이 나빠지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이혼을 원치 않아 졸혼으로 합의했다"면서 "지금이라도 내 인생을 찾고 싶었다.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마음은 편안하다"고 했다.

이어 "내 인생의 스승이 이외수다. 나를 달구고 깨뜨리고 부쉈던 사람이다. 그를 존경하는 마음은 변함없다"고 덧붙였다.

전씨는 "이외수의 아내로 존재했던 제가 이제는 저 자신으로 살아가고 싶을 뿐"이라며 "아주 오랜만에 방학을 맞이한 기분"이라고 했다.

전씨는 미스 강원 출신으로 1976년 이외수와 결혼해 슬하에 2남을 두고 있다.

한편 지난 2017년 7월 KBS2 '살림하는 남자들 시즌2' 방송에서 전 씨는 그동안 이혼하지 않은 이유를 털어놓은 바있다. 방송에서 전 씨는 "이혼을 생각해봤다. 나 이외에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더라"고 했다. 이어" 원수 같고, 때려주고 싶었다"면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또 잊어버린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결혼 생활을 유지해 온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떠나버리면 자식이 계모 손에 크는 게 싫더라"면서 "(그래서) 돌아왔다. 내가 이겼다"고 했다.

5년전 위암 3기 진단으로 위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던 이 작가는 지난 21일 페이스북을 통해 근황을 전했다. 그는 "요즘 스케줄이 아이돌 저리가라다. 많은 분들을 만나고 많은 일들을 해냈다"며 "다행히 건강은 무척 좋아지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존버(끝까지 버틴다는 뜻)'정신을 끌어안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으로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했다.


이외수
1946년 9월 10일, 경상남도 함양군
소설가

학력
춘천교육대학교 중퇴
인제고등학교 졸업
인제중학교 졸업
1958기린초등학교 졸업

경력
남예종예술실용전문학교 학장
안중근의사동상건립 범국민운동본부 홍보대사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소셜미디어 홍보대사
평창스페셜올림픽 소셜미디어 명예홍보대사
2018 평창동계올림픽 홍보대사
독서의 해 홍보대사
제1대 강원도 광역정신보건센터 자살 예방 홍보대사
멀티문학상 심사위원장
폐질환 예방 홍보대사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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