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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해는 대한민국의 원로 개그맨이다. 스탠딩 콩트의 달인이며, 대본도 없이 모든 개그를 소화해냈다고 한다. 현재는 스탠딩 콩트가 거의 사라진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과거 스탠딩 코미디의 산 증인인 셈이다.

숭문고등학교 졸업 후 극장 쇼 무대에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하여 TV로 진출한 이상해는 당초 하리 K라는 예명으로 활동했지만 1970년대 초중반 방송에서 외래어 사용을 없애라는 정부 시책으로 인하여 예명을 이상해로 바꾸었다. 그리고 TBC의 쇼 투나잇이란 프로에서 동료 코미디언 이상한과 팀을 이루어 이른바 이상한 이상해 콤비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러나 1975년 대마초 흡연으로 입건되어 무기한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다가 4년 만에 출연 정지가 해제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 후 이주일과 콤비를 이뤄 큰 인기를 끌었고 이주일을 코미디 황제로 만드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코미디언 활동뿐만 아니라 '희한한 세상'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MC를 맡기도 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유튜브에 소개된 신기한 동영상을 소개해주는 정도의 프로그램이다. 걸쭉한 입담으로 각종 비디오를 소개할 때의 대사는 백미였다.

11세 연하의 "경기 명창"으로 알려진 국악인 김영임과 1979년에 결혼했으며, 딸인 최정은씨도 서양화가로 활동 중. 나름 예술인 집안이 됐다.

만성 치질을 앓고 있었는데 후배인 심형래가 상상플러스에서 그 에피소드를 얘기하면서 코믹스럽게 상황을 설명하는데 시청자들이 크게 빵 터졌다고 한다. 출연진들도 박장대소할 정도였다. 

2019년 4월 24일 TV 프로그램에서  이상해는 “97세 노모를 모시고 사니까 효자라고 한다. 저보고. 저는 절대 그게 효자라고 생각 안한다. 같이 산다고 해서 그게 효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부모는 그런 효자를 바라지 않고, 부모는 전부 자식들이 그저 세상을 잘 살아가는 모습, 말씀 안 해도 잘살아가는 모습을 봐야 효도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또 이상해는 “그것 때문에 제 인생이 바뀌었다. 부모님에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망쳐 놨다”고 대마초에 대해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때 고생을 많이 했다. 그거는 제 운명이니까. 피웠다고 하니까. 무조건 잡아놓고, 저는 끝까지 안했다고 하고, 상당히 싸움이 있었다. 조사하는 사람하고”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덧붙여 “후배가 대마초를 같이 했다고 통사정을 하더라. 눈물을 흘리면서 하길래 했다고 했다. 바보처럼. 그리고 5년인가 활동하지 못해서 굶었다. 집안을 제가 이끌 때인데, 저녁 무대도 못 나가고 낮 무대는 아예 못 나갔다. 그렇게 고생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상해( 본명 : 최영근 )
1945년 11월 15일, 서울
불교
배우자: 김영임, 딸: 최정은

학력
숭문고등학교

경력
2005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문화훈장
1995 문체부장관 표창장
1994 한국방송대상 남자코미디언상
1993 KBS 코미디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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