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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는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출신 기업인이다. 본명은 정태준이었지만 역술가의 조언을 받아서 정태수로 개명했다. 전 한보그룹 회장이었다.
1923년 8월 13일 경상남도 진주군에서 태어났다. 애초에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소학교만 다니며 농사일을 지으며 그리 넉넉치 않은 어린시절을 보냈다. 공식적으로 전주 농림고와 한양대에 입학한것으로 나와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서류상으로만 다닌 것이고 실제로는 다니지 않았다고 사석에서 얘기하곤 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머리는 있는듯 1951년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1951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는 세무공무원으로 재직했다.
하지만 말단 세무사일이 싫증이 나기도 했고, 이름을 태준에서 태수로 바꿀정도로 역술에 관심이 많기도 했다. 그래서 1969년 가을즈음에 친구와 같이 점쟁이를 찾았는데 "직장 그만둬, 사업을 하면 대한민국에서 첫째, 둘째 손가락에 꼽히게 될 것이야",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라는 점쟁이의 조언을 듣고 나서부터 귀가 솔깃하여 사업 대상을 몰색하려고 등산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돌을 수집했고, 진짜로 몰리브덴 광산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달치 월급 정도 되는 헐값으로 광산을 인수한 뒤, 공무원을 그만두고 1974년에 한보상사를 설립함으로써 그 길로 사업가로 전직했다. 그게 한보그룹의 시작이었다.
한보그룹은 땅과 관련된 사업을 해야 성공한다는 점쟁이의 조언에 따라 건설업에 뛰어들었고, 공무원 재직 시절 쌓은 인맥을 이용, 대출받은돈을 통해서 구로구 일대에 아파트를 지어서 돈을 번 뒤, 대치동에 미도아파트를 건설했다. 미도아파트로 짭짤하게 이득을 보자, 헐값에 쓸모없어 보이는 땅을 산 뒤 거액의 자금을 빌려서 미도아파트 건너편에 은마아파트를 지었다. 그리고 은마아파트의 완판으로 2,000억 원을 손에 쥐며 재벌로 거듭나게 된다. 물론 은마아파트를 짓던 도중 부동산 규제가 걸려서 한 번 망하기 직전까지 갔지만, 때마침 2차 오일 쇼크로 화폐가치 하락과 함께 부동산이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으면서 20일만에 완판, 위기에서 벗어날수 있었다.
아파트 사업이 성공하고 나서는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 당진제철소건설, 제약업 진출(상아제약), 수서지구 개발 등을 주도하였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부도가 났다.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당진제철소 건설 과정에서 건설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건설 자금이 엄청나게 불어났는데, 알짜배기 계열사 돈으로도 감당하지 못할 지경까지 다다르니 완전히 무너져 내렸던 것이다. 이는 1997년 외환 위기를 야기하였다. 이후 당진제철소는 현대제철에 인수되었다. 수서지구 개발 과정에서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에게 개발이권 명목으로 로비를 벌인 이른바 수서사건을 일으켜 문제가 되었다. 사과상자를 뇌물의 상징으로 만들어 준 주범이라고 한다.
1997년 5월, 공금 횡령 및 뇌물 수수 혐의(한보사태)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이 때 한보 리스트가 정치사회상에 회자되기 시작했고 정태수 리스트와 관련된 많은 정치인(권노갑, 문정수등)들이 검찰 조사를 받고 기소되기도 하였다.
사업 결정에 점쟁이의 조언을 곧잘 들었던 정태수였기에, 한보사태후 세간에 "당신은 쇠를 만져야 큰 돈을 번다."는 조언을 듣고 제철 사업을 시작했다는 풍문이 돌았다. 소문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세무에 밝고 사업가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공직자 출신으로 대기업을 일굴 만큼 철저한 연구와 수완을 갖췄던 정태수의 면모를 볼 때 이 쇠는 사실 금속이 아니라 동전, 즉 금융업을 뜻하는 말이었을 것이라고. 실제로 1990년대 중반만 해도 종금사들은 12개월 이내의 저이율 외채를 끌어들여 다시 동남아시아 등지에 O%의 이율을 얹는 방식으로 앉아서 떼돈을 벌었던 만큼, 차라리 금융업에 손을 댔더라면 1990년대 후반의 종금사 퇴출 사태를 비켜갈 만한 새로운 금융사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후 5년 5개월 동안 복역하다가, 2002년 10월 고혈압과 협심증을 이유로 병보석으로 석방되었다. 그러나 2005년 강릉영동대학(이 역시 정태수가 재단을 세웠다)의 교비 72억원을 횡령하여 또 잡혔고,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2심 재판 도중 2007년 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그대로 해외로 도피했다. 그 뒤 아직도 잡히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 2017년 6월 11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 출연한 조용래를 통해 4남 정한근이 '정태수가 아직 살아 있고, 자서전 초고를 만들었다'고 한다.
2019년 6월 21일 회삿돈 320억원을 스위스로 빼돌린 혐의로 수사를 받다 잠적한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아들이 두바이에서 검거됐다. 지명수배 상태에서 도피 생활을 한 지 21년 만이다.
검찰 등에 따르면 정태수 전 회장의 넷째 아들인 정한근(64)씨는 최근 두바이에서 검거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직원들을 두바이에 보내고, 정한근씨를 송환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정한근씨는 1997년 한보그룹이 도산하자 임직원들과 짜고 정태수 회장 일가 소유의 시베리아 가스전(田) 개발업체인 동아시아가스(EAGC)의 자금 3270만 달러(323억여원)를스위스의 비밀계좌로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정한근씨는 1998년 수사가 시작되자 잠적했으나 공식적으로 외국에 나간 흔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한근씨는 294억원의 세금도 체납하고 있다.
검찰은 정한근씨에 대한 신병 확보가 어려워지자, 2008년 9월 공소시효(10년) 만료를 이틀 앞두고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재산 국외 도피 및 횡령 혐의로 그를 불구속기소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현재 정한근씨를 송환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검찰은 정씨가 국내에 돌아오면, 10년 넘게 미뤄진 재판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정한근씨의 아버지 정태수 회장도 2007년 해외로 나간 이후 행적이 오리무중이다. 정태수 전 회장 일가는 외환위기 이후 계속해서 해외 도피 생활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령(96세)인 정태수 전 회장의 생사여부조차 파악되지 않은 상태다.
정태수 전 회장은 국세청이 2014년 공개한 개인 최고액 체납자다. 체납액은 증여세 등 2225억원이다.
정태수
1923년, 경남 진주
전 한보그룹 회장
학력
진주농림고등학교
한양대학교산업대학원 수료
경력
1992~1997 한보그룹 총회장
1992~ 대한하키협회 명예회장
1980~1991 한보철강 대표이사 회장
1986 한국주택사업협회 부회장
1984 아시아하키연맹 부회장
1984~1992 대한하키협회 회장
1982~1991 한보탄광 대표이사 회장
1981 한보그룹 회장
1980 서울시육상경기연맹 회장
1979 한보종합건설 대표이사 회장
1976~1991 한보주택 대표이사 회장
1974 한보상사 회장
1951~1974 세무 공무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