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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화하면  떠오르는 것이 일자 눈썹의 순악질 여사이다.  쓰리랑 부부로 한시대를 풍미했던  대한민국의 코미디언이다.

김미화의 존재를 세상에 각인시킨 프로인 쓰리랑 부부에서 걸죽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던 것이 사람들의 뇌리에 깊히 박혀 있어서 전라도가 고향인 것으로 흔히 오인되지만, 실제 고향은 경기도/서울이다. 서울 수유리 빈민촌에서 자랐다. 기존에는 출생지가 서울특별시로 기재되어 있었지만, 실제 출생지는 경기도 용인시 신갈이다. 신갈에서 태어난 후 다음해에 서울 수유리로 이사와서 수유리와 미아리 쪽에서 성인이 될때까지 쭉 자랐다고 한다. 어릴적 내내 수유리와 미아리 지역에 있는 하천 다리 근처에 당시 빈민들이 거주하던 무허가촌에서 살았다고 한다. 천지천이 자신이 어릴 때 주로 살던 곳이었다고 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는데 너무 자주 이사를 해서 집이 헷갈릴 정도였다고 한다. 셋집을 살다가 이유도 모르게 쫓겨나서 마당에서 비닐 장판을 깔고 잤던 적이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지독하게 가난하여 단한번도 행복했던 기억이 없었다고 한다. 일곱살 터울의 동복 친여동생이 있다. 그러나 나이차가 많이 나서 어릴 때 집안일은 김미화가 도맡아 도왔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을 웃기는데 재능을 보여 동네사람들의 관심을 차지했다고 한다. 

김미화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해장국집을 거들면서 자랐다.
신경여상에 입학한 후 학교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도 있었으나, 개그맨 준비를 하면서 알게 된 지인을 통해 방송국 보조출연(엑스트라) 아르바이트도 하였다고 한다. 코미디에 대한 꿈을 결코 버릴 수 없었던 그녀는 상고 졸업을 앞둔 1983년 제2회 KBS 개그콘테스트에서 이정문과 함께 '사부와 석순이'라는 개그로 은상을 수상하면서 공채 2기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당시 딸이 졸업 후 바로 취업하기를 원하시던 어머니는 저녁식사 중에 KBS '생방송 오늘'에서 그녀가 개그콘테스트 수상자로 나온 걸 보고 매우 놀랐고, 돌아온 그녀를 때리고 화를 내며 말렸다고 한다. 말린 이유에 경제적인 부분도 컸지만, 그녀의 모친이 사실 가장 중요하게 걱정한 것은 '연예계 성상납'이었다고 한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여성이던 딸이 그런 것에 휘말릴까봐 용납할 수 없었다고한다.

그러자 김미화는 "6개월 안에 개그우먼으로써 확실한 위치에 가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 그만두겠다고 약속하겠으니, 그동안만 지켜봐달라"고 하여 어머니를 설득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데뷔한 뒤 생각외로 빠른 시일내에 큰 인기를 얻고, 수입도 커지게 되자 어머니는 오히려 응원하는 입장이 되었다고 한다.

데뷔 직후 KBS '젊음의 행진'에서 활약하면서 '유머 일번지'까지 진출하며 점점 입지를 다져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인기가 더 올라가자 다른 여러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게 된다. 본인 스스로 당시를 회고하면서 '나는 당시 신인 중에서 가장 욕심이 많은 신인이었다'는 표현을 할 정도로 수많은 아이디어를 연구하고, 어마어마한 연습을 하며 철저하게 노력했다고 한다. 이 욕심이라는 것은, 당시 여성들의 사회적 위치가 개그계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여성 코미디언들은 프로그램에서 주도하는 역할은 별로 하지 못하고 주로 받쳐주는 역할이었고, 그에 대한 불만이 있던 김미화가 그런 관습을 극복하여 '여성이 주도하는 코미디 연기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에서 나온 것이었다고 한다. 

1986년에는 7살 연상의 사업가와 결혼하게 된다. 

1988년부터 김한국과 콤비를 이뤄 쓰리랑 부부에 출연했는데, 국악 판소리에서 모티브를 따와 국악인 신영희의 북소리에 맞춰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연기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프로가 큰 인기를 얻으며 전국적으로 유명한 코메디언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이 코너의 인기에 힘입어 1990년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KBS 코미디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이때가 코메디언으로서 김미화의 전성기였다.

그러던 2004년 4월 김미화는 18년 동안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맞고 살았다고 주장하며 이혼 소송을 제기하여 파문이 일었다. 그동안 김미화는 남편과 잉꼬부부로 알려져 있었기에 대중들에게 그 충격이 더 했다. 김미화의 남편은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를 했다. 결국 2005년 1월에 합의이혼에 이르게 된다. 자녀의 친권과 양육권을 가져가면서 재산을 6대4로 분할했다.

2007년 1월 5일 5살 연상인 윤승호 성균관대 스포츠과학과 교수와 재혼하게 된다. 윤승호는 홍서범과 평소 친분이 있었는데, 김미화가 조갑경과 친했기 때문에 그 인연으로 2001년부터 알고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두 딸 모두 미국 명문대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화
1964년 9월 22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신갈동
154cm,  A형
개신교(장로회) → 천주교(세례명: 로사)

학력
서울우이초등학교
신경여자중학교(현 선덕중학교)
신경여자상업고등학교(현 세그루패션디자인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사)
성균관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 커뮤니케이션학과 광고홍보전공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동양철학과 예술철학전공

경력
2017 제8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
2012 제10회 언론인권상 특별상
2011 보건복지부장관상
2009 제10회 국회대상 올해의 라디오 프로그램상
2009 이웃돕기 유공자 포상식 대통령 표창
2004 MBC연기대상 라디오부문 우수상
2002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언 연기상
2002 기자들이 뽑은 2001년 최고의 선행 연예인
1999 제6회 대한민국연예예술상 희극인 여자연기상, TV 방송진행상
1998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대중예술부문
1991 KBS코미디대상 여자연기상
1990 KBS코미디연기상 대상
1983 KBS개그콘테스트 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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